국내에서 가장 넓은 호남평야, 그 위에서 비로소 지평선을 만난다. 남북 60킬로미터,

동서 30킬로미터 남짓한, 국제적인 기준으로 치면 꼬마 평야에 불과하지만 우리에

게 필요한 식량이 가장 많이 산출되고 정서적으로는 ‘대평원 콤플렉스’를 해소해 주

는 고마운 땅이다. 이 너른 들판 한가운데를 흐르는 동진강을 따라 아스라이 둑길이

뻗어 있는데, 정읍에서 출발해 김제 벽골제까지 23킬로미터 구간은 호남평야의 절정

을 볼 수 있는 들길이다. 삼국시대의 수리시설인 벽골제와 조선 말 나라를 뒤흔든 동

학농민운동의 발상지인 만석보 터도 이 들판에 있다.

동학농민운동의 불씨가 된 만석보 터 옆으로 동진강 둑길이 끝없이 흘러간다.

 이 넓고 풍족한 들판에서도 지독한 가난과 착취가 있었던 것이다.

1700년 전 백제 때 축조된 김제 벽골제 제방은 아직도 든든하고 수문도 일부 남아

다. ‘호남(湖南)지방’의 ‘호수’가 바로 벽골제의 저수지였을 만큼 거대했던 저수지는

이제 사라지고 꼴을 베고 가는 노부부만이 한가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