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김기사 박대리의 페르마타] 프롤로그

by 김기사 posted Feb 24,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헤드라인사진.JPG




 가끔 허블망원경으로 찍은 수천만 광년 거리의 은하 사진이 신문에 실린다.

 1광년은 1초에 지구를 일곱바퀴 반이나 도는 빛이 1년동안 날아가야 도달하는 거리이다.

 

 수천만 광년... 실로 엄청난 거리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고 있는 그 사진의 은하계는 수천만 년 전 모습이므로 지금 현재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광활한 넓이도 전 우주의 규모에 비하면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으니 우주는 인간의 머리 구조로 이해가 불가하다.

 내가 비록 우주의 아주 작은 점일지라도 이렇게 태어나서 현재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지구의 나이는 45억 년이라고 한다.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시기는 불과 만 년이 되질 않는다.

 45만 분의 1 확률을 뚫고 그 만 년 안에 태어났다는 것도 축복이다. 

 

 나머지 시기에 태어났다면 공룡과 함께 빙하기를 겪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5천 년 전에 나일강 근처에서 태어났다면 7살 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피라미드만 쌓다가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5백 년 전 페루에서 태어났다면 더 끔찍하다.

 손톱이 닳도록 찬란한 잉카문명을 만들어 놓고, 축구에서 이긴 팀의 주장이라는 이유로 제단에서 심장을 적출당했을 수도 있다.

 

 백 년 전 독일에서 태어나지 않은 건 또 얼마나 행운인가..  

 군수품 순위에서 빵보다도 더 뒤로 밀리는 소총수로 1차 세계대전을 겪었을 터이니 내 목숨은 파리보다 못했을 것이다.

 민간인만 3천만 명이 죽었다던 2차 세계대전도 난 운 좋게 피했다. 

 

 지금도 인도에선 출생부터 계급을 정하는 '카스트 제도'로 인해  천민 계급으로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수 억에 달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지에서 새롭게 독립국가의 자격을 가진 나라가 한국을 포함해 150여개국이었다. 

 당시 그 나라들 중 한국의 경제수준은 꼴찌인 인도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였다고 한다.   

 지금도 홍수가 나면 수도의 60 %가 물에 잠기는 필리핀에서 원조를 받던 이 나라가, 도로 기반 시설도 형편없는 미얀마보다 못 살았던  이 나라가, 지금은 세계 15위의 경제력으로 극빈국들을 돕고 있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814만 분의 1이라고 한다.

 대낮에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가 인도를 넘어온 과속 차량에 치여 죽을 확률보다도 더 적은 확률이다.

 로또에 당첨되진 않았지만 빙하기도 피했고, 인도의 불가촉천민(Untouchables) 계급도 피했고, 히틀러 시대의 유태인 신분도 피했으니 난 로또 당첨자 못지않은 행운아다. 

 

 내가 아무리 젊은 시절에 고생을 했다 한들, 6.25전쟁 이후 독일에 광부로 자원해 갔던 그들만 하겠는가..

 내가 아무리 학벌이 없다 한들 하루 1달러로 사는 문맹자들만 하겠는가..

 내가 아무리 해외여행도 못 가봤다 한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400미터 근방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던 수천만 중국 소수민족만 하겠는가.. 



 원유보다 수백 배 비싸다는 희소광물을 남부럽지 않게 보유하고 있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상당수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한 번 내리는 변기물 양으로 한 가족이 하루를 생활한다고 한다.

 그나마도 웅덩이 물로...

 화석연료부터 2차 산업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하는 이 나라에서 여행을 꿈꾸는 현재의 나는 '기적'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기적 속에 살고 있다. 

 

 사람은 위만 보려는 습관이 있다.

 우리는 30년 전에도, 40년 전에도 일본, 미국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방글라데시나 네팔은 지금도 어느 나라 옆에 붙어 있는지 잘 모른다.

 위만 보기 때문이다.

 지금은 욘사마와 삼성전자로 인해 한국을 모르는 일본인이 별로 없겠지만 25년 전 일본의 한 중학교에서 설문조사를 했을 때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학생은 채 10%도 안됐다고 한다.

 심지어 한국이란 나라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는 학생이 30%가 넘었다고 하니 그들에게 우린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였을 것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잘나고 못남의 가치를 달리하니 일본을 아는 한국인도, 한국을 모르는 일본인도 누가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를 모르는 방글라데시인들을 어리석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지나치게 위를 보고 살수록 착각은 늘어나고 시야는 편협된다는 점이다.

 10여 년 전 미국의 전문기관에서 각 나라의 행복지수를 조사해 보니 방글라데시가 1위였다.

 국민의 상당수가 문맹인이고 신분증도 없으며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사는 그들은, 자신들 위로 누가 있는지 잘 모른다.

 우린 그들보다 많이 알지만 뭐가 중요한지는 그들보다 모를지도 모른다. 

 

 난 여행을 꿈꾼다.

 지금껏 위만 보고 살아온 난 과연 현명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행복해지기 위해 일본인보다 더 꼼꼼하고, 미국인보다 더 전문적이며, 유태인보다 더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적당함의 지혜를 갖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은 그 열정들을 독으로 바꿔 놓은 것 같다.

 

 그 독을 달콤한 꿀로 다시 바꾸기 위해 난 여행을 떠나려 한다.

 

 내가 살고 이 세상은 지금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다.

 수 억년에 걸쳐 만들어진 화석연료를 불과 2백 년 만에 다 쓰고 있다.

 돌도끼를 처음 사용하고부터 수레바퀴를 만들어 낼 때까지 수 만년이 걸렸지만, 전기가 발명되고  전자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까진 2백 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것들을 다 알아가고 의미를 깨닫기엔 내게 주어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안다 한들 앞으로 변할 것들을 아주 조금만 더 알 뿐이다.

 인간의 생은 한계가 있고 내 인생을 지나쳐서 일어날 일들은 후세의 몫이다.

 혹시 지금 나는 몰라도 될 것들을 위해 지나치게 내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난 내가 어떻게 해서 지금의 위치에 있게 되었는지 알아가는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세상을 보고 그것들이 수 천 년 동안 어떤 이야기들을 갖고 있었는지도 알고 싶다. 

 그리고 나서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민했던 '정의'를 생각하고 싶다.

 그러면 방글라데시인들 보다 더 행복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이 우주에서 가장 운이 좋고,지구 역사상 가장 행복한 존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나를 들뜨게 한다.

 내가 모든 것을 걸고 여행을 떠날만한 가치가 여기에 있다.

?Who's 김기사

profile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