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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indizio.blog.me/30171066953 indizio님의 블로그 중 '자전거의 무림 고수는 모두 암스테르담에'
유럽사람들은 운전을 잘한다. 부드럽게 잘하는 게 아니라 터프하게 몬다. 그런데 사고가 잘 안난다는 얘기는 운전을 정말 기술있게 잘 한다는 얘기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출장에서 위트레흐트에서 아인트호벤까지 약 한 시간 정도 이탈리아 여자가 모는 차를 탔다. 이탈리아 반도의 부츠 뒷굽에 위치한 오뜨란도라는 동네에서 왔다는 이 전직 TV 아나운서는 연신 '운전을 못해 미안하다'며, 한 손으로는 수동 기어를 파바바바바박 바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슈슈슈슈슈슈슈슉 돌려가며 좁은 도로를 질주했다. 감각도 좋아서 아슬아슬하게 차들을 비켜 지나갔다.내가 '당신 운전 잘 하는데?'라 했더니 '제발 우리 남편에게 그 얘기 좀 해줄래'라며 웃었다.
이들은 자동차 운전 뿐 아니라 자전거 운전도 기가 막히다. 유럽 전체적으로도 그렇겠지만 특히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페달에 발을 붙이고 태어나는지 남녀노소 모두가 조호성 뺨치게 운전을 잘한다. 예전에 영국 시골에 있을 때, 90살은 되어보이는 호호 할머니가 엄청나게 큰 자전거를 끌고 1분에 한걸음씩 힘겹게 걷다가, 내리막길에 다다라 자전거에 올라타더니 시속 50km로 분노의 폭주를 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암스테르담은 거의 평지라서 분노의 폭주는 못하지만 대신 평균적으로 다들 쌩쌩 달린다. 빨간색으로 깔맞춤한 아주머니의 복장에서 보듯이, 이곳 여자들의 기본 차림새는 트렌치코트에 숄더백에 자전거다. 신발은 힐을 신기도 한다. 그래도 자전거를 탄다. 쌩쌩 잘 탄다.
중앙역 앞이다. 십대 소녀들은 저렇게 (중간에 초록색 옷) 뒤에 앉아가기도 한다. 저거 쉽지 않다. 중심잡기 매우 어렵다. 그것도 한적한 시골길도 아니고 벅적벅적대는 도심 한복판에서. 어렸을 때부터 숙달됐기 때문에 가능할거다.
꽃시장에서 고호 미술관으로 가던 길에 신호대기 중이다. 화훼의 고장 답게 꽃을 달고 가는 사람도 있다. 왼쪽 여자는 땅에 발을 딛기 귀찮아서 표지판을 잡고 서있는 모습이 이미 달인의 경지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오른쪽 여자에 주목하자. 그는 오른손으로 전화기를 들고 있으며 왼손으로는 빨간 핸드백을 들고 있다. 누군가와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다.
신호가 켜졌는데 그냥 전화통화 계속 하면서 질주한다.
얼씨구? 이젠 아예 전화는 어깨로 받쳐놓고, 왼손으로는 수신호를 넣는다. 좌회전 하겠다는 신호다. 전화는 할지언정 교통 에티켓은 철저히 지킨다. (다들 너무 빨리 달리므로 수신호가 없으면 충돌사고가 날거다). 이 분, 거의 두 손을 다 놓고 운전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더니 계속 전화를 하면서 저 울퉁불퉁한 철길 위로 좌회전을 유유히 때린다. 몸동작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그것도 치마에 코트 차림으로.... 신이다 신.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다 저렇게 잘 탄다.
역시 중앙역 근처. 한국처럼 산악자전거나 싸이클 형태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신사용, 숙녀용 자전거를 타는데, 문제는 그 신사숙녀용 자전거들의 성능이 경주용 뺨친다는 거다. 물론 엔진(운전자의 체력)들도 다 좋다. 바퀴도 크고 안장은 푹신하고 기어도 아주 잘 들어간다. 전반적으로 정비 상태들이 참 좋다. 버려져서 녹슬고 있는 자전거를 보기 힘들다.
가족끼리 타고가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고수들만이 오를 수 있는 경지다. 일단 아이를 안정적으로 안고 타는 모습을 보라. 아무나 못한다. 중요한건 엄마와 아빠의 호흡이다. 저렇게 둘이 딱 붙어서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간다는게 절대 쉬운게 아니다. 한 명이 움찔해서 부딪히면 온가족이 응급실행이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의 부부들은 너무나도 여유있게, 마치 끈으로 연결된 것처럼 딱 붙어서 다닌다. 써커스단 같다. 그리고 잘 보면 저 엄마는 심지어 뒤에 애도 하나 태우고 있다.
나도 현지인 흉내를 내본다. 서울에서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생활바이커로서 이곳 문화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자전거는 호텔에서 하루에 13유로에 빌려주는데, 정말 좋다. 근데 엄청 크다.
고호 미술관 앞에서 일행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천천히 달려온다.
달리면서 찍힌 사진들은 너무 짤뚱하게 나와 차마 블로그에는 올리지 못한다. 어찌나 자전거가 높은지 핸들이 내 가슴팍까지 온다. 안장은 거의 끝까지 내렸다. 172cm의 장신인 내가 이렇게 겨우 올라 탔으니 나보다 작은 일반 한국남자들은 많이 애먹을 것 같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키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세계에서 평균 키가 가장 큰 나라다) 이들이 큰 자전거 모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몰 수만 있다면 자전거는 클수록 잘나간다. 이 동네 꼬마들은 어린이용 자전거 잘 안탄다. 발이 닿을동 말동 하는 어른 자전거를 쏜살같이 몰고 다닌다.
자전거 인프라도 좋다. 이런 식의 2중 주차시설이 기차역마다 충분히 갖춰져 있다. 여긴 위트레흐트 역 앞이다. (네덜란드는 처음 와보지만 박지성-이영표가 PSV 있던 시절에 네덜란드 축구를 몇 번 보다보니 웬만한 도시 이름들은 다 귀에 익다. 아인트호벤, 알크마르 등등...)
중앙광장 근처. 도심의 좁은 길은 자전거 전용 도로다. (물론 겁나 쌩쌩 달린다. 한국에서 하듯이 보행자가 자전거도로로 무심코 내려섰다가는 네덜란드 응급의료 체계를 몸으로 체험하게 될 지도 모른다)
사촌누나가 사진들을 보고 '저 동네는 헬멧 안쓰냐'고 물었다. 그러고보니 헬멧 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미국에선 헬멧없이 자전거타면 벌금내는 동네도 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도 동호인들은 모두 (쓸데 없이 비싼) 헬멧을 쓴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에선 헬멧 쓰면 바보취급 당할 것 같다. '너 운전에 자신 없구나?' 하는 눈으로 볼 것 같다. 같은 백인 동네지만 미국과 유럽은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
하긴 암스테르담은 길에서 대마초도 뻑뻑 피는 동네인데 헬멧 따위 안쓴다고 누가 대수롭게 생각할까..
자전거는 대체로 생활의 필요에 맞게 만들어져있다. 애들도 태우고 짐도 싣는다. 저렇게 태워놓고 또 겁나게 쌩쌩 달린다. 내가 묵은 호텔이 있는 암스텔 역 근처다.
중앙광장. 이렇게 우유상자같은 걸 달고 있는 자전거가 표준인 것 같다. 앞바퀴 위에 짐을 싣도록 두꺼운 프레임이 붙어있다. 컨테이너라도 운송할 수 있을 것 같다. 저기에 애를 태우고 가는 사람도 봤다.
한국에선 신사숙녀용 자전거들의 바퀴가 얇다. 암스테르담은 신사숙녀용 자전거라도 바퀴들이 퉁퉁한 소세지처럼 두껍다. 돌바닥에서도 안정감있게 달리라는 거다. 대신 바퀴 표면의 홈이 깊지는 않다. 그래서 두꺼운 바퀴지만 속도도 잘 난다.
짧은 시간 즐거운 자전거 하이킹이었다. 부럽긴 한데, 한국에서는 아무리 인프라에 돈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저런 환경이 절대 될 수가 없다. 왜냐면 사람들의 운전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자전거도 그렇고 자동차도 그렇다. 암스테르담처럼 핸드폰 전화하면서 자전거 타다간 하루에 100명씩 죽어나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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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퇴근할 때 보니까 광화문 앞의 자전거 도로를 아스팔트로 까맣게 덮어놨다. 더 잘 만들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이용자가 너무 없어서 없애려는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한국은, 특히 서울은 유럽이 아닌 미국의 도시체계를 이식한 도시라 자전거가 아닌 자동차에 맞게 설계되어있다. 그나마 내가 살고 있는 서촌 쪽은 오래된 동네라 좀 나은 편인데 그래도 자전거 전용도로 하나 없는 실정이다. 쯧.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는 폭이 넓은 도로에 공간을 좀 내서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식이다. 차도를 빌려쓰기도 하고 아예 인도 위에 만들기도 한다. 이래서는 자동차와 사람들 때문에 자전거가 제대로 다닐 수가 없다.
폭이 넓은 도로변에 자전거길을 낼 게 아니라, 폭이 좁은 도로, 특히 큰길이 아닌 이면도로를 아예 자전거만 다니고 차는 못다니는 도로로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종로와 을지로로 차가 다니는데 청계천로에도 차가 다녀야 할 이유는 별로 없다. 좀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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