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를 쓰면서 가끔 장비에 대한 경험담도 싣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전거여행 카페에는 가끔 "오르트립 패니어들 중에서 어떤 모델이 좋아요?" 라는 질문이 올라오는데, 여러 모델을 한꺼번에 쓰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그에 대한 답변은 찾아보기 힘들다.
(난 4set인 총 8개를 구매했었는데, 수입업체의 사정에 의해 짝짝인 재고들을 할인받아 구매하는 바람에 여러 종류의 패니어들을 갖게 됐다.)
물론 개인차가 있는 부분이라 내 생각이 절대적이진 않겠지만, 나의 경험이 참고 자료는 될 것 같아 잠깐 설명하고 여행기를 이어가겠다.

오르트립 방수패니어는 재질에 따라서 가격과 모델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오늘은 형태에 대해서, 특히 수납 입구를 닫는 방식에 따라서 나눠지는 모델로 설명을 해보겠다.
사진에서 맨 왼쪽은 '바이크패커 클래식' 모델이며, 가장 비싼 형태이다.(2개 한 세트에 246,000원/씨*바이크 기준)
가운데는 오르트립의 전통적인 모델인 '백롤러 클래식' 모델이고, 오르트립 패니어 가격의 기준이 된다.(2개 한 세트에 210,000원)
오른쪽 패니어는 '백롤러 씨티' 라는 보급형 모델이고, 가격도 가장 싸다.(2개 한 세트에 152,000원)
재질은 모두 같으며 내구성도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먼저 바이크패커 클래식 모델은 입구에 조임끈 두 개가 있고 내부에 포켓이 있으며 별도의 어깨끈이 제공된다.
뚜껑을 닫는 방식이라서 수납된 모습이 깔끔해 보이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모델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물건을 넣었다 빼는 것이 의외로 불편하다.

롤러클래식 모델은 먼저 입구를 한두 번 말아서 가운데 스트랩을 체결한 다음..

어깨끈을 앞쪽 하단에 있는 고리에 거는 방식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모델이다.
바이크패커 클래식에 비해 입구를 닫는 게 간편하고 적재용량도 살짝 많다.
어깨끈이 항상 달려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갑자기 어깨에 매야 할 때에도 편리하다.
유럽에서 본 자전거 여행자들 중 70~80% 정도가 오르트립을 쓰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역시 백롤러 클래식 사용자가 가장 많았다.

백롤러 클래식의 장점 중 또 하나는 오르트립 랙팩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는 점이다.
서로가 결합되도록 적당한 부위에 스트랩이 위치해 있다.
(물론 탄력끈으로 한번 더 감아서 고정해줘야 한다)

나중에 다시 사야 한다면 모든 패니어를 백롤러 클래식으로 통일할 생각이다.

문제는 오른쪽의 백롤러 씨티 모델인데, 이게 딜레마다.
재질이나 내구성은 다른 모델들과 동일하지만 내부 포켓이 없고 어깨끈이 없다는 이유로 가격이 무척 저렴한데, 그 가격 차이의 유혹이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모델에는 그냥 지나치기엔 만만치 않은 단점도 있다.
입구를 돌돌 말아서 사진처럼 양쪽 측면의 버클을 연결하는 방식인데, 버클의 스트랩 길이가 짧아서 한두 번 말아서는 체결이 안되고, 서너 번 이상을 말아야 하기 때문에 적재공간 손실이 꽤 심하다.

백롤러 클래식에 비해 저만큼의 공간을 접어서 말아야 버클이 체결되는 것이다.

이 정도의 단점이라면 오르트립(Ortlieb)社에 구조 개선을 요구할만 하다.
그런데 난 이 단점을 간단한 '자작 신공'으로 해결해서 쓴다.

내가 여행한 거의 모든 나라의 도로변에는 가끔 이런 타이어 튜브 조각들이 떨어져 있다.
하루 70km를 이동하면 서너 개는 볼 수 있다.

적당한 폭으로 잘라서 입구 양쪽 귀퉁이에 달린 버클에 연결했다.

고정은 역시 케이블타이가 적합하다.

그래서 이렇게 백롤러 클래식처럼 사용한다.
중국부터 이렇게 쓰고 있으니 일단 그 안정성은 검증이 됐다.
그래도 누군가가 나에게 "오르트립 패니어를 사려고 하는데, 종류가 너무 많아서 뭘 사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문의한다면 일단은 백롤러 클래식을 추천할 것이다.
그리고 210,000과 152,000원의 차이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백롤러 씨티를 구입하라고 한 후, '제작 신공'을 알려주고 싶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전거여행 카페의 벼룩시장에 잠복하고 있다가, 중고로 나온 신품급의 백롤러 클래식을 15만원에 구입하는 것이다.
1~2개월에 한 번 정도는 매물이 나온다.

씨엠립에 빨리 들어가고 싶지만 남은 거리는 130km인데다가 더운 날씨로 인해 휴식의 횟수가 늘어났다.
아무래도 오늘 중으로는 도착하기 힘들 것 같다.

점심시간이 아직 멀었는데도 작은 마을만 나타나면 허기진 배를 채울만한 식당을 찾아 두리번거리게 된다.
저 정도 규모가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식당이라는 사실이 허탈하지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식당은 찾기가 어려워도 이런 구멍가게는 꾸준히 보인다.
구멍가게 말고는 다른 종류의 상점들이 잘 눈에 띄지 않는 걸 보니, 이 나라 사람들은 생필품의 대부분을 이런 곳에서 구입하나 보다.

어느 구멍가게나 항상 전면엔 휘발유와 음료수, 그리고 아이스박스가 놓여 있다.
그런데 냉장고도 귀한 이 나라에서 얼음은 어디서들 구하는 걸까..?

자전거 여행의 장점은, 달리고 달리다 보면 웬만한 궁금증은 다 해소가 된다는 점이다.
역시 얼마 못 가서 얼음을 파는 현장이 포착됐다.
그런데 오토바이에 실린 얼음에 불순물들이 많이 붙어 있다.
자세히 보니 쌀겨인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뒤이어 얼음을 꺼내오는 장소는 볏짚 더미였는데, 30도를 오르내리는 한낮에도 저 안에서 안 녹는다는 게 신기했다.

저걸 오토바이에 싣고 달리다가 부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타이어 튜브 조각은 이럴 때에도 요긴하게 쓰인다.

또 한 시간 가량을 달리다가 음료수를 사 먹기 위해 들른 구멍가게에서는 얼음 거래만큼 신중한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태국을 비롯한 이쪽 나라 사람들은 조미료만큼이나 '단맛'을 참 좋아한다.
커피나 주스, 그리고 스무디 같은 것들을 사 먹어 보면 귀가 당길 정도로 달다.
업소에서 사용할 주스 농축액을 사는 것 같은데, 거래 당사자들의 긴장감이 우리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음료수를 사고파는 일에 집중하는 캄보디아인들을 보고 있자니, 한국에서 가벼운 일들로 여겼던 것들에 대한 관념이 새롭게 재정립되는 것 같다.

한국의 자양강장음료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음료수의 구매 사유는 기껏 해봐야 카페인,당분의 유해성을 무시할 정도의 갈증 해소 욕구일텐데, 이들에게는 삶의 중요한 일부분인 것 같았다.
이 자전거 여행을 마칠 때쯤 되면 내가 해골물을 마신 원효대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거래가 끝난 구매자들은, 박하수를 한 밤의 해골물처럼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원효대사 부부에게 미소 한 방 쏴주고 떠나갔다.
그러나 다른 캔음료보다 500리엘이나 비싼 박하수를 마시고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 우린, 나태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깨달음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했다.

오늘 묵을 도시인 Kralanh 에 거의 다 왔다.

막판 스퍼트로 시내에 진입한 후 현지인들에게 호텔의 위치를 물어보니 모두 한 곳만 알려준다.

이 주유소 옆 건물에서 식당을 같이 운영하는 여관 같은 곳인데, 이 도시에 달랑 하나밖에 없는 곳이니 시설에 비해 숙박료가 비싸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에어컨 방은 17달러, 선풍기 방은 12달러를 달라고 하지만 두 방 모두 원효대사가 잤던 동굴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다.
더운물도 안 나오고 천정 구석엔 박쥐만한 거미들이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에어컨에서 거미줄이 튀어나올 것 같길래 그냥 선풍기방에 짐을 풀었다.

주로 반바지를 입고 달렸던 박대리의 다리가 황토색이 됐다.

가끔 반바지를 입고 달렸던 내 다리도 똑같이 탔다는게 억울한걸 보니 난 원효대사처럼 되긴 글른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씨엠립을 향해 출발을 했다.
우리가 타기 시작한 6번 국도는 태국을 오가는 차량이 주로 몰리기 때문에 통행량이 많다.
캄보디아 운전자들은 태국과 달라서 과속을 많이 하는 편이다.
도로 곳곳에 꺼진 구덩이들을 피해서 갓길을 자주 침범하는 차량들로 인해 오랜만에 긴장감이 높아졌다.

파자마 복장이 특이하다.
캄보디아에서 파는 사탕수수 주스는 라임도 같이 넣어서 짜기 때문에 더 향긋하다.
우리에게는 현지인보다 500리엘을 더 비싸게 받는것 같았지만, 그래봐야 130원이니 모른척 하고 사 먹었다.

바가지 쓴 500리엘을 얘네들 미소로 환불받고 보니 남는 장사를 했다.

씨엠립에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정확한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현지인 가이드에게 들은 얘기로는 관광객 중 한국 사람이 가장 많단다.

도로와 인도는 엉망이었지만 씨엠립이 이렇게 큰 관광도시인지 몰랐던 우린 그 규모에 깜짝 놀랐다.
시내에 진입하면서 보이는 호텔들도 라오스의 수도인 비안티엔에 있는 호텔 개수의 몇 십 배는 되어 보였고, 크고 작은 요식업소들 사이에서 한국어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하는 식당들까지 심심찮게 보인다.

검색을 통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압사라앙코르 게스트하우스'를 먼저 찾아갔는데, 본격적인 성수기가 시작되어서 방이 없단다.

앙코르와트 투어도 이틀치가 마감되어서 3일 후 프로그램을 예약해놓고 다른 숙소를 찾아 나섰다.
2일 코스(B-1, B-2)를 선택했는데 1인당 41달러이다.

인근의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짐을 풀고 피곤한 몸을 재정비했다.

여러 나라를 자전거로 돌아다녀 봤지만 씨엠립은 정말 특별하고 놀라운 도시였다.
라오스만큼이나 못 사는 국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숙박, 요식, 공연, 투어, 교통(항공 포함), 쇼핑, 카지노 등, 관광지에 필요한 요소들이 넘쳐났다.

시내 어디를 가나 이렇게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을 골라서 아침식사를 할 수가 있다.

가격도 만원이면 2인이 충분하게 먹을 수 있는 양을 시킬 수 있다.

다만 종업원들이 그냥 갖다 주는 건(빨간 화살표) 서비스가 아니라 별도로 계산되는 것이니, 먹기 싫으면 탁자 위에 놓기 전에 사양해야 한다.

씨엠립에 머무는 동안 대여섯 번이나 이용했던 한인식당 '대박집'이다.

불친절하다는 얘기도 있고 불공평하다는 얘기(서비스로 군고구마를 주는데 워낙 손님이 많다 보니 못 먹는 사람들이 속출)도 있지만, 맛과 가격과 양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씨엠립의 '대박 업소' 자격을 인정받을만 하다.

여기의 가장 큰 메리트는 고기와 반찬을 무한 리필 해준다는 점이다.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는 5달러짜리 삼겹살 정식인데, 실제로도 그 메뉴가 가장 맛있다.

점심때를 지나서 본 모습이라 한산하지만 제시간에 오면 거의 만석이다.

된장찌개를 비롯해서 밑반찬들도 제법 한국의 맛을 낸다.
해외 관광지에서 1인당 5천5백원에 이런 한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좌측 하단의 화살표가 대박집이다.

씨엠립에서의 캄보디아 사람들은 또 어떤 느낌일까..?

한 국가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니 일단 소박함에 대한 기대는 버리고 시내를 돌아다녀 보았다.

역시 시장 구경이 제일 재밌다.
열심히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씨엠립은 참 풍족한 도시다.

아마 그 풍족함에 한국인들이 많은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라는 추측도 해 본다.

관광지의 풍족함 속에서도 삶의 진한 모습들은 우리의 눈길을 머물게 했다.

더 진한 모습을 보고 싶으면 이런 사람을 따라가보면 된다.

그런데 이 동네 상인들은 왜 파자마같은 걸 즐겨 입는 걸까..?
파자마 무늬만큼이나 뭔가 찐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배낭여행자 모드로 돌아다니다 보면 그러한 궁금증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파자마에 대한 비밀은, 출발과 정지의 신호가 동시에 켜지는 것 만큼이나 난해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