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보디아와의 국경을 향해 다시 페달을 밟았다.

국경 도시인 '총촘'까지 가려면 먼저 수린을 거쳐야 한다.

40km를 달려서 나온 표지판을 보니 오늘 수린까지는 못 가겠고, 타툼(Tha tum)에서 쉬어야 될 것 같다.

남쪽으로 많이 내려와서일까..?
작렬하는 태양열이 타이어까지 녹일 기세다.

내 몸이 녹기 전에 시원한 음료수로 체온을 좀 내려보려고 들른 슈퍼에서 또 한류팬을 만났다.

점원이 스마트폰을 통해 듣고 있던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주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난 처음 듣는 노래인데 박대리가 한국 노래란다.
서태지의 '하여가' 이후로 내가 기억하는 한국 가요는 두 개다.
싸이의 '광란스타일'과 하이바(크레용팝)의 '빠빠빠'.

숙소가 좋다.
17,000원에 와이파이 빵빵하고 에어컨도 빠빠빠다.

약간 부실하긴 하지만 조식까지 공짜니 하루 더 쉬기로 했다.

이틀을 잘 쉬고 '수린'을 향해 또 전진.

수린이 제법 큰 도시라 숙박료가 비쌀 것 같았지만, 캄보디아로 넘어가면 당분간 풍요로움과는 이별을 해야 하니 비싸더라도 좋은 숙소에서 묵기로 했다.

이 정도면 괜찮을듯싶어 체크인을 했는데 그래도 2만원 남짓이다.

수린에서 잘 쉬고..

70km 떨어진 '총촘'을 향해 출발.

헉... 깜짝이야..

태양을 피해 잠시 쉬고 있는데 귀뿔소 한마리가 슬그머니 다가와 서 있다.
얼음과자가 먹고 싶었나 본데 뺏길 박대리가 아니다.

총촘에 잘 도착해서 국경을 넘을 체력을 충전.

다음 날 일찍 국경을 향해 출발해서..

드디어 여권에 캄보디아 도장도 찍게 됐다.

복잡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한산하다.

보통 태국에서 캄보디아 씨엠립쪽으로 가는 관광객들은 왼쪽의 파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국경으로 몰리기 때문에 무척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우린 북쪽의 국경(빨간 화살표)으로 들어와서인지 수월하게 수속을 밟아나갔다.
(노란색은 씨엠립까지 가야 할 경로)

캄보디아는 비자가 필요하다.
공식 비자피는 1인당 20달러인데, 저렇게 대행을 맡기면 비싸진다.
저 백인도 4만원 가량을 냈다.

우린 직접 했는데도 역시 소문대로 웃돈을 요구한다.
요즘은 부당한 요금을 거부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서인지 노골적으로 달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태국 화폐로만 받는다면서 20달러보다 많은 금액인 800바트(26,000원)를 요구했다.
난 차분하게 미리 준비해 간 영어를 반복했다.
"우린 이미 20달러인 걸 알고 있다."

두 번을 얘기하자 직원은 아무 말 없이 40달러를 받고 여권에 비자를 붙여줬다.

캄보디아의 차량 통행 방향은 태국과 반대인 우측통행이라서 백미러를 다시 바꿔 달아야 한다.

백미러 위치를 바꾼뒤 자전거에 다시 올라타고 있는데 저 밑에서 국경검문소쪽으로 뭔가를 잔뜩 실은 뭔가가 올라온다.
적재된게 뭔가 봤더니 중고자전거다.

뒤에선 오토바이 다섯대가 밀고 있다.
오랜만에 본 '중국스러운' 모습이다.

2년 전에 우리와 비슷한 경로로 캄보디아를 여행한 자전거여행자의 여행기를 찾아 읽어보니 도로포장이 안됐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지금은 시원하게 잘 깔려 있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낮기온은 더 올라갔다.
캄보디아의 황토흙이, 달궈진 불가마처럼 느껴진다.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국도변에는 저런 음료수병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여긴 사설 주유소다.
오토바이의 연료인 휘발유를 주로 판다.

라오스와 많이 비슷할 것 같았는데 이곳 사람들은 또 다른 느낌이다.
그 느낌이 좋게 느껴지는 건, 일단 라오스 사람들에 비해 잘 웃는다.

그리고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도 안 느껴진다.

결혼식이 열리고 있길래 다가가서 사진기를 꺼냈더니, 혼주인듯한 아주머니가 저 2층으로 날 데리고 올라갔다.

신부대기실이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친근해진다.
역시 여행지에 대한 소감은 상대적인 것 같다.
처음에 방콕 인근의 위험한 도로를 달릴 땐 중국이 그립더니, 라오스에 들어가서는 태국의 여유가 생각나고, 라오스에서 보지 못한 미소를 캄보디아에서 보게 되자 보너스를 받은 느낌이다.

50km를 달려서 도착한 첫 번째 도시에 한국어 트레이닝 학원이 보인다.

들어가서 이런저런 대화를 해보니 한국에 취업하기 위한 현지인들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한국어가 가능한 이 청년들 덕분에 환전을 할 수 있는 은행과 호텔의 위치를 알아냈다.

숙박업소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지역이니 와이파이가 없어도 달라는 돈을 다 줘야 한다.

벽에 붙어 있는 참새만한 거미에게 날개가 없다는 것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할 수 있다면 태국보다 비싼 숙박료를 지불할만 하다.
(사회 기반 시설 워낙 열악하다보니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게 맘 편하다)

숙박료는 태국돈으로 지불을 했지만 식당같은 곳에서는 자국화폐만 받을 것 같아서 환전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는 굳이 캄보디아 돈을 많이 환전할 필요가 없었다.
캄보디아는 달러를 흡수하기 위해 온 국민이 일심동체가 되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달러를 선호한다.
길거리 상점에서 1달러를 주고 500리엘 짜리 작은 생수 한 병을 집어 들면 당연한 듯이 3,500리엘을 거슬러 주니 달러만 있다면 자동 환전이 된다.
은행에서도 외국인들은 대부분 달러로 환전한다.

그 사실을 몰라던 나는 괜히 많은 돈을 환전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캄보디아 화폐는 다른 국가에서 환전을 잘 안 해줄 정도로 가치가 적기 때문에 캄보디아에서 모두 소진하는 게 좋단다.

2014년 1월 기준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환율이다.
[태 국] 1바트 - 330원
[라 오 스] 7,000낍 - 1,000원
[캄보디아] 1,000리엘 - 270원
[말레이시아] 1링깃 - 320원

캄보디아에서 관광지를 제외하면 이 정도로 큰 규모의 재래시장은 드문 편이다.

이 나라가 점점 마음에 든다.
식당의 메뉴들도 라오스에 비해 밥의 비율이 높다.

밥을 먹고 숙소에 돌아오니 다른 자전거여행자들이 들어와 있다.

이런 나라를 자전거로 돌아다니다가 만나는 자전거여행자들은 더더욱 반갑다.
네덜란드인들인데 이들도 우릴 보고 많이 반가웠는지 식사 제안을 해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폴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직업이 대형 화물선 캡틴(선장)이란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니 우리가 독일에서 유로벨로를 달릴 때 종종 봤던 장면이다.
작년에 유럽을 여행한 얘기를 하자 폴 부부는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좋아한다.
우리도 이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기에 짧은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웃고 떠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 날 이동하는 도중 본 개인병원의 모습인데 아주 소박하다.
사실 저런 곳이 오히려 진료의 폭은 더 넓다.
난 20여년 전 강원도의 어느 부대에서 약제병으로 군복무를 했었는데, 대여섯 가지의 약으로 암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질병을 처방했었다.
물론 내가 처방한 약을 먹은 병사들은, 일주일이나 지속될뻔한 감기가 7일만에 완치되는 기적을 맛보았다.

대여섯 가지의 음식만 먹지만 나날이 무거워져가는 박대리에게도 폭이 넓은 도로가 필요하다.

현지인이 1,000(270원)리엘을 내고 500리엘을 거슬러 받는 걸 지켜보다가 사 먹으면 똑같은 금액을 내지만, 그렇지 않으면 1,000리엘을 줘야 한 컵을 먹을 수 있는 사탕수수는, 바가지요금이 아깝지 않을 만큼 시원하고 맛있다.

캄보디아는 전기를 수입하기 때문에 전기요금이 비싸서, 냉장고 대신 저렇게 얼음이 들어있는 아이스박스에 음료수를 담아 놓고 판다.

여행을 1년 가까이 다니다 보니 이젠 쉬는 시간에도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다.
한국에 거미만한 참새가 있다고 하자 모두들 안 믿는 눈치다.
(나도 니네 나라에 참새만한 거미가 있는 줄 몰랐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