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남아시아 여행이 시작됐다.
이번 여행을 위해 의류(여름저지,패드바지,바람막이 남여 각 한 벌씩)를 협찬해 주신 '호O리테일(주)'의 'O바인' 담당자께 감사를 드리는 의미로 ULVINE깃발을 들고 한 컷.

이스타항공으로 1인당 42만원(텍스 포함)에 왕복 티켓을 구매했다.
저가항공인 이스타항공의 무료 탁송 수화물 규정은 상당수의 항공사들이 채택하고 있는 규정인, 박스당(갯수 제한은 없음) 가로+세로+높이=205cm, 무게는 1인당 20kg까지이다.
무게가 넘으면 1kg당 10$ 정도의 오버차지를 내면 되지만, 사이즈를 넘게 되면 탁송 자체가 거부되므로 포장박스의 크기에 신경을 써야 한다.
대부분 여행자들이 자전거포에서 구하는 박스의 가로,세로,높이의 합은 215cm 정도이기 때문에 박스 일부를 재단해서 다시 붙여야 하는데, 이렇게 했을 때 앞바퀴뿐만 아니라 뒷바퀴도 분리해서 몸체만 넣어야 박스에 들어간다.
그리고 박스 중간 틈에 바퀴 하나 정도는 넣을 수 있고 남게 되는 바퀴 하나는 어쩔 수 없이 따로 포장해야 한다.
무료 탁송 수화물 규정은 항공사마다 다양한데, 자전거여행자들은 사전에 꼭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예를 들면 말레이시아항공인 경우 무척 관대하여 사이즈와 갯수에 상관없이 30kg(미주 제외)까지 무료이고, 베트남항공인 경우는 무게와 사이즈도 규제를 하지만 자전거 자체에 별도의 요금이 책정되어 있어서 태국 기준으로 편도 1대당 25만원 정도를 더 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자전거 박스는 모두 3개가 됐고, 총 무게는 43.7kg으로 오버차지를 각오했지만 창구직원의 배려로 그냥 통과.
(이 부분은 복불복이다. 창구 직원에 따라 에누리 없이 거부 당하거나 정확하게 오버 차지를 징수당할 수 있지만, 우리 경험상 규정 수치의 10% 정도는 오버되어도 대체로 눈감아 주는 것 같다.)

6시간의 비행을 거쳐 방콕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장(arrival at airport)은 자리가 비좁고 눈치가 보이는 구조라서, 3층에 있는 출국장으로 올라가 자전거 조립을 했다.

어느 공항이나 자전거를 타고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다.
몇 번을 물어보고 겨우 방향을 잡았다.

태국은 차량 통행 방향이 한국,중국,유럽과 반대인 좌측통행이기 때문에 백미러를 오른쪽으로 옮겨 달았다.

처음 접하는 현지 교통상황은 언제나 당황스럽다.

그러나 이제 박대리도 경력이 쌓인지라 별 무리 없이 따라온다.

공항을 벗어나고 18km 지점에서 숙소를 잡았다.
조식 없이 하루 650바트(22,700원)짜리 모텔인데 에어컨과 냉장고가 있어서 적당한 숙소였다.

아직 이른 시간인 오전 10시경이지만, 어제 공항 의자에서 잠을 설쳤기 때문에 일찍 쉬어야 한다.

정신없었던 태국에서의 둘째 날을 도마뱀과 함께 지내고..

앞으로의 예상 루트를 짜보았다.
그러나 이번 동남아 여행은 미리 정보 검색도 하지 않았고 계획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여정 도중 언제든 루트가 바뀔 수 있다.

숙소에서 참 친절하게 우리를 챙겨주었던 직원이다.
태국 사람들은 대체로 순박하고 느긋하다.
중국처럼 클락션을 마구 울려대는 운전자도 보기 힘들고, 서두르는 사람도 별로 없다.

다음 날, 숙소에서 나와 동쪽을 향해 달리다가 맛본 코코넛인데...아마 당분간 이 과일과 사랑에 빠질 것 같다.
시원한 과즙을 마신 후, 안 쪽에 붙어 있는 하얀 살을 긁어서 먹어보면 얼마나 고소하고 달콤한지 모른다.

'차층사오(Chachoengsao)'란 도시에 들어와서 숙소를 잡았다.

21,000원에 조식 포함이고 냉장고와 에어콘이 있다.
우린 이 정도의 시설과 가격이면 앞으로 불만 없이 체크인을 하기로 했다.

비교적 큰 도시이지만 길거리 간식을 사 먹는 여학생들의 얼굴에선 30년 전 한국의 모습이 보인다.

태국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먹거리다.
바나나잎 안에 뭔가를 넣어서 구워 먹는 음식인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만큼 태국인들이 즐겨 먹는 간식인것 같았다.

거리에서도 코코넛 열매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이 나라의 기후는 뜨겁다.
건기(11월~2월)에 속하는 12월의 태국은 아직도 낮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린다.

아직 태국어를 인사 정도밖에 못하는 우린, 사진이 붙어 있는 식당만 들어간다.

만원이면 사진에 보이는 메뉴에 맥주까지 곁들여 먹을 수 있다.

말레이반도 국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숙소 근처에 있는 사원인데 밤새 불공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율법이 좀 빡쎈 종파 같다.

사원 입구엔 신께 바치는 용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고 있었다.

과거에 날개가 달렸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박대리는, 젤라또 전문점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서 내 지갑을 열게 한다.

태국 물가로는 꽤 비싼 가격 덕분인지 외국인 몇 명 말고는 한산하다.

요렇게 세 숟가락이 오천원.

그에 반해 재래시장 물가는 아주 착하다.
저 게장을 오천원어치 사면 세 사발은 줄 것 같다.

호텔 조식을 먹고..

...하루 더 쉬기로 했다.
(유럽에서 돌아온 후 3개월 만에 다시 최홍만 체력이 됐다.)

태국의 거리에서도 보행자의 권리는 사치다.
한국에서 술 먹은 행인이 저런 간판에 머리라도 부딪치게 되면 가게 주인에게는 대출받을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선 저 차를 피해 차도로 나갔다가 오토바이에 치여도 과연 저 노점상에게 병원비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행자 보험을 들어놓기를 잘했다.

나무를 갈아 만든 즙을 얼굴에 바르고 다니던 태국 사람들의 모공은 이제 한국산 화장품들이 점점 책임지고 있다.

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말은 참 어렵다.
저기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태국인들을 상상만 해도 불쌍해서 가슴이 미어진다.
자음과 모음이 네 개까지 합쳐지는 글자들을 외우는 것도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인데, 동음이의(同音異義)어가 넘쳐나는 구어(口語)들을 어느 세월에 이해할 것인가..
1.선풍기 바람이 시원하다.
2.홍합탕이 아주 시원하다.
3.속이 다 시원하다.
4.가려운 곳을 긁으면 시원하다.
색깔에 대한 표현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1.파랗다.
2.푸르다.
3.퍼렇다.
4.시퍼렇다.
5.푸르딩딩하다.

그래도 국민들에게 자국의 글씨를 갖게 해 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그 정도의 슬픔은 '툭툭' 털어버릴 수 있다.

태국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메세지를 전한다.
니뽄 페인트를 쓰면 오른쪽 건물이 왼쪽 건물처럼 된다는 이 명쾌한 광고는 외국인들의 고개도 끄덕이게 한다.

쇼핑타운 구경도 놓칠 수 없다.

대단한 아디다스..
이 더운 나라에서 패딩 잠바를 팔다니..

그래도 LG전자가 러시아에서 에어컨 대박을 터트린 것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겠지..

중국의 프랜차이즈 메뉴 가격들이 한국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놀랬는데, 여긴 좀 싸다.
중국에서 먹었던 '상다리 흔들 세트'가 만 천원 정도밖에 안 한다.

우린 주로 이런 데를 돌아다닌다.

그런데 이 마트엔 시식이 없다.
시식이 없는 마트는 정말 섭섭하다.

그럴 땐 재래시장으로 자리를 옮기면 된다.

새우를 보고 놀라는 표정만 지어주면 주인이 막 집어준다.

반건조 새우를 열 마리 정도 먹어 치운 박대리는 커피 한 사발로 느끼한 속을 달래겠다고 한다.

나에겐 죽었다 깨어나도 '그 맛'을 모를 것 같은 세가지가 있다.
하나는 커피다.
태운 보리차에 설탕을 탄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다음은 등산이다.
단풍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은 내 눈엔 외계인 같다.
마지막으로 낚시다.
생각만 해도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다.
더군다나 몇 시간을 기다려서 잡은 고기를 놓아준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다.
태국에서 한 가지가 더 생겼다.
해산물을 먹고 느끼하다고 크림 토핑이 잔뜩 올라간 보리차를 먹는 박대리를 이해한다면, 난 산에서 낚시를 하며 커피를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박대리가 '말라리아'라는 단어로 검색을 했나 보다.
캄보디아가 위험지역이라며 커피를 한 사발 더 마실 기세다.
캄보디아를 포기하기로 했다.
일단 파타야로 내려가서 박대리가 작년에 새로 산 수영복이 과연 얼마나 늘어나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이번 동남아여행은 이런식으로 하기로 했다.
그냥 내키는 대로..
그리고 단순함이 시키는 대로..